보고 싶습니다 | 운영자 | 2024-09-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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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절 셋째주일] 남신도주일/한가위감사주일
보고 싶습니다
누가복음 18:35-43
인간은 누구나 한계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한계가 있으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라고 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소망’입니다. 소망은 어떠한 것을 바라거나 그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사전적 의미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그 일을 이루실 방법과 때를 온전히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여러 가지 수고를 다하여도, 내 의지로 온전히 이루지 못하는 모든 일 앞에서 낙심하거나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온전하게 이루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대하는 것으로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소망’입니다. 예수께서 맹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맹인은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눅18:42). 보고 싶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보다’와 ‘보고 싶다’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우리는 두 눈을 가지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군대에 간 자녀, 해외에 나가 살아가는 가족, 먼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올라간 사랑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두 눈이 있음에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두 눈이 가지고 있는 능력, 시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본다’는 것은 시각적 기능을 말하는 것이라면, ‘보고싶다’는 지금 당장 볼 수 없지만, 볼 수 있는 상황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소망의 언어입니다. 맹인이 예수님께 자신의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은, 그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참으로 역설적입니다.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 전혀 납득 되지 않는 상황으로 말씀을 이끌어 갑니다. 건강한 두 눈을 가진 사람들이 보지 못한 것을,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맹인을 통해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보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가능성과 소망을 찾을 수 없는 맹인을 통해, 가장 중요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맹인이 자신의 주변을 지나가는 예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메시아로 인정하며,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로 온전히 고백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멀쩡한 두 눈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 들은 볼 수 없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통해 예수님이 구원자 되심을 보게하셨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이것은 간절한 소망의 표현입니다. 시력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고백하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헌신의 결단으로 예배드리는 남신도가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믿음으로 하나 된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고 싶습니다. 이번 추석 명절 기간 동안 성도들의 온 가족이 믿음으로 굳게 서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소망을 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반드시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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