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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신앙 - 짧은 교회사(3) 권오성 2005-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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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hurchsudo.onmam.com/bbs/bbsView/7/752034

10년 전만 해도 우리 지역은 리어커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길이 좁았고, 집은 ‘앉아도 한 방, 누워도 한 방’이라고 할 정도로 작은 판자집들이 촘촘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옆 길도 없었고 그냥 산이었습니다.

1960년대 초에는 수도도 들어오지 않아서 저 아래 동네 적선동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합니다. 아마 6.25 전쟁 이후 서울 시내 판자촌 1호 동네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던 우리 교회가 1960년 대 중반 이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1967년에 교회당을 4층 건물로 건축했는데 이 때를 전후해서 ‘세상을 위한 교회, 평신도 중심 선교, 지역사회 봉사, 철저한 훈련과 교회 갱신’을 논의하고 다짐했습니다.

문동환목사님이 4대 담임목사로 부임하면서 이런 방향에 속도가 붙어 교인 훈련을 위해 그 해 11월부터 수요강좌가 시작되었고, 기획위원회가 조직되어 교회의 변화와 새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문동환, 최승국, 최윤복, 강환우, 최완영, 김종상, 한준섭, 최정숙, 전정순씨가 첫 위원들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어려운 지역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지역 조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첫 사업이 교회당을 개방하여 매일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도서실로 활용하는 일이었는데 하루 평균 80여명이 이용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여기서 공부한 분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 곳곳에서 귀중한 인재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굴다리 지역사회 학교를 개교해서 요리 강좌, 위생 교육, 또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던 한글 해득교실, 뜨게질과 아후강 강습도 했습니다. 또한 대화 설교를 시도하였고, 추수감사절 예배를 한국교회에서 최초로 추석절기에 드리기도 하였습니다.

또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유치원 과정을 1970년에 주간학교로 개설하여 지난 2003년까지 30여년 동안 그 몫을 잘 감당하여 왔습니다. 서명실권사님이 첫 책임자이었습니다.

이 당시는 한마디로 교회의 과거 전통이 다 전복(顚覆)되었던 신앙의 질풍노도 시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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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권오성 2003.10.29 00:00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고, 군생활이 새로운 전기가 되고, 건강하게 지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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